여행-2017.06 발칸

2017.06.18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yolo28 2017. 8. 3. 16:21









2017.06.18 맑음




네움에 있는 Hotel Adria의 아침.

아침에 일어나 발코니에 나가보니, 파란 하늘과 코발트 빛 아드리아해, 붉은 지붕이 휴양지의 아침을 깨우고 있었다.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밖으로 나갔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예쁜 추상화를 그리고 있네.






오늘의 일정

네움(Neum) 두브로브니크(Dubrovnik) 두고폴레(Dugopolje) 숙박



   

네움(Neum) 두브로브니크(Dubrovnik) 2시간 소요.




 두브로브니크의 신 항구인 그루즈 항구(Gruž Harbour)로 가서

구 시가지에 있는 항구까지 40분간 배를 타고 갔다.






신 항구 (Gruž Harbour)











배를 보호하기 위해 달아놓은 공모양 물체.

우리나라에서는 시커먼 폐 타이어를 달아놓는데......

이렇게 하니 깨끗하고 보기도 좋네.






해적선도 하나 전시해 놓고......






우리가 탈 배는 앞에 있는 Laura가 아니고 뒤에 있는 하얀색 배






배를 타고 가며 본 풍경들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찌~~~인한 코발트 빛 아드리아해의 물빛에 홀딱 반해 버렸다.
















조타실에도 들어가 보고......




























로크룸 섬






구 항구(Old port)가 보인다.






구 항구의 풍경들
















두브로브니크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두브로브니크를 일컬어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했고,

아일랜드의 문호인 조지 버나드 쇼는 지상에서 파라다이스를 찾으려면 두브로브니크에 와봐야 한다.”고 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

 

크로아티아 아드리아해에 면한 달마티안 해안에 있는 도시.

7세기 도시가 형성되어 해상무역 중심 도시국가인 라구사(Ragusa)공화국으로 시작하였다. 1945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가 되었다가 1991년 독립을 선언하였다.

 

두브로브니크라는 이름은 참나무라는 뜻의 슬라브어 두브라바(Dubrava)에서 유래 되었다. 마을 근처에 참나무 숲이 많았기 때문.

두브로브니크는 근대 이전에는 라구사 공화국(Republica Ragusina)이라 불렸는데, 라구사(Ragusa)란 라틴어로 바위라는 뜻이다.







구 항구에 있는 Gate를 통해 구 시가지로 들어간다.


















***돌체 비타(Dolce Vita) : 젤라또 가게

    군둘리치 시장 : 과일, 야채, 생필품을 파는 재래시장.

    로칸다 페슈카리야 : 씨푸드 레스토랑.







루자 광장(Luža Square/Luža Trg)

구 항구의 게이트를 통해 구시가지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루자 광장을 만난다.

성 블라이세 성당과 스폰자 궁전 사이에 있다.

하얀 대리석이 깔려있고,

예로부터 축제가 열리고, 칙령을 반포하는 집회의 장소로 사용됐다.

앞에 쭉 뻗은 길은 스트라둔 대로이며 두브로브니크 성벽에 있는 필레 문(Pile Gate)까지 연결된다.







성 블라이세 성당(Church of St. Blaise)

1368년에 세워져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성 블라이세에게 바쳐진 성당이다

 성당 위에 성 브라이세 주교가  축성하는 모습으로 세워져 있는데,

주교는 왼손에 대지진 이전의 구시가지 모형을 들고 있다.

브라이세 주교는 베니스로부터 두브로브니크를 지키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이 부근에서 순교했다.







오를란도 기둥(Orlando Column)

브라이세 성당 앞에 프랑스 서사시에 나오는 롤랑(오를란도)의 조각 동상이 서있다.






오를란도 기둥 밑받침에 일직선으로 그어진 선이 있다.

이 직선의 길이가 51.1Cm로 길이 단위인 1(ell)이다.

길이를 재고 싶을 때 이곳에 와서 대보고 확인했다고 한다.














종탑(시계탑)

1444년에 만들어진 높이 35m의 탑에는 2톤짜리 청동 종이 매달려있다.














스폰자 궁전(Sponza Palace)

1516년 라구사 공화국의 세관으로 은행의 역할을 겸했는데

현재는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와 재판 기록 등을 보관하는 고문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667년 대지진의 피해를 입지 않은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로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결합된 건축물이다.   


















작은 오노프리오 샘물.

종탑(시계탑) 근처에 있다.






민속의상을 입고 기념품을 팔고 있는 상인.







마린 드르지치(Marin Držić, 1508-1567)

크로아티아의 저명한 극작가.

가톨릭 사제가 되는 교육을 받고 1526년 사제 서품을 받았으나,

반항적인 성격으로 가톨릭 사제보다는 극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코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해서 코가 반질반질......







두브로브티크 대성당(성모승천대성당/Dubrovnik Cathedral)

1100년대 초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는데 두 번의 지진으로 파손된 것을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은 1715년에 보수한 것이다.

 이탈리아 건축학자 버팔리니가 설계.








렉터 궁전(Rector’s Palace)

총독의 저택이었고, 라구사 공화국의 평의회와 원로원도 함께 있었다.

두브로브니크에 수로와 분수를 건설한 오노프리오가 1435년에 후기 고딕 양식으로 건축했는데,

화약 폭발 사고로 큰 피해를 입어 초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보수 했다가,

1667년 대지진 후 바로크 양식으로 보수되었다.

궁전 2층은 문화역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궁전 중정에서 클래식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







스트라둔 대로 (Stradun)

플라차(Placa)라고도 불리는 이 거리는 1468년에 조성되었고,

필레 문(Pile Gate)에서 루자 광장까지 일직선 200m 정도 되는 길이다.

스트라둔은 거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스트라다(Strada)’에서 왔다.

길 양쪽엔 카페, 상점, 여행사 등이 늘어서 있는데,

1667년 대지진 때 거의 모든 건물이 파괴되어 그후 새로 건축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이 거리는 원래 바닷물이 들어오는 수로였는데, 수로를 메워 만든 거리이고, 바닥에는 대리석을 깔았다.

루자광장에서 필레문을 향해 가다 보면 오른쪽 골목들에는 계단들이 있고 왼쪽 골목들은 평지로 되어있다.

수로를 기준으로 남쪽에는 로마인의 후예가 살고, 북쪽에는 남슬라브인들이 살았는데,

두 민족은 사이 좋게 공존해 왔다. 후에 수로마저 메워버리고 하나가 되었다.

 

구시가에는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산재하고 있어

구시가 전체가 197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프란체스코 수도원(Franciscan Monastery).

14세기 프란시스코회에서 건립한 수도원.

정문 위에 새겨진 아름다운 피에타는 당시 유명 조각가인 안드리이치 형제의 작품.






성벽 아래에 있는 문이 필레 문(Pile Gate)







오노프리오 샘물(Onofrio’s fountain)

1438년에 오노프리오 데 라 카바(Onofrio de la Cava)가 만들었다.

당시 두브로브니크에 물이 귀했는데 막대한 돈을 투자하여 12Km 떨어진 스르지 산에서 물을 끌어와

오노프리오 샘물(Onofrio’s fountain)을 만들었다.

돔 지붕 아래에 16면으로 된 벽이 세워져 있고,

각각의 벽에는 서로 다른 얼굴 모양이 있는데 그 입에서 물이 흘러나온다.


















성 사비오르 성당(St. Saviour Church)

1520년 첫 번째 지진 당시 사람들이 무사히 살아남은 것에 대한 감사드리기 위해 지었다.

1667년 두 번째 지진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더욱 성스럽게 여겨진다.







약국 박물관(말라 브라차 약국/Ljekarna Mala Braća)

프란시스코 수도원에 있는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약국.

약보다는 천연 허브로 만든 로션이나 크림 등 화장품이 더 인기가 있다고 한다.








두브로브니크 성벽 걷기

성벽은 길이 1,949m로 구시가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고 한 바퀴 도는데 2시간 정도 걸린다.

가장 높은 곳은 25m. 두께는 해안 쪽이 1.53m, 육지 쪽은 6m나 된다.

구시가에 있는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고 5,000여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던 1667년에 일어난 대지진 때도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을 정도로 견고한 성벽이다.

성벽이 처음 건설된 것은 8세기였고, 1516세기에 걸친 대공사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벽과 성 사비오르 성당 사이에 있는 계단에서 성벽 걷기를 시작한다.







성벽 걷기에 대한 안내문

오픈 시간 : 08:00 - 19:30

입장료 : 어른 150쿠나, 어린이 50쿠나

 (유로는 안 받고 신용카드나 크로아티아 쿠나만 받음)






성벽 티켓



















성벽에서 본 스트라둔 대로






오노프리오 샘물









































로브리예나츠 요새(Lovrjenac Fort)

바다에서 침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14세기에 세워졌다. 3층으로 된 요새의 높이는 36m.






































부자(Buža)카페

Buža구멍이란 뜻.

성벽 남쪽 아래에서 해수욕을 즐기며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유명 카페.

저녁에는 일몰을 감상하기에 좋은 포인트.

꽃보다 누나에 나와서 우리나라에도 유명해진 카페.

대성당 뒤쪽 길을 따라 남쪽 성벽 아래 스테판 문을 통과하면 바로 있다.

















로크룸(Lokrum) .

두브로브니크에서 6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섬.

구 항구에서 로크룸 섬에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로크룸 섬에 얽힌 이야기 두 가지

첫 번째 이야기 : 십자군 원정 때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가 풍랑을 만났는데, 로크룸 섬으로 피해 목숨을 건졌고, 수도원에서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리처드 왕은 고마움의 표시로 아주 큰돈으로 보답을 했고, 수도원은 그 돈으로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리처드 왕은 영국으로 돌아가다가 오스트리아에 붙들리게 되었고, 당시 영국 국민들이 3년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막대한 금액을 몸값으로 오스트리아에 주고 풀려날 수 있었다.

 

두 번째 이야기 : 14세기에  전 유럽에 흑사병이 유행하여, 인구의 1/3이 흑사병에 걸려죽었다고 한다. 이때 흑사병의 전염을 막기 위해 두브로브니크로 들어오는 배와 무역상들이 로쿠름 섬에 30일간 있다가 나오게 했다. 그런데 그 후에도 구 시가지에 흑사병 환자가 발생해, 10일을 연장하여 40일을 섬에 있다가 나오게 하니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서 quarantine(검역 격리/원래 40일간 이란 뜻)이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단두대 모형

보기만 해도 섬뜩한 칼.

그러나 만져보니 장난감 느낌.







성벽을 돌고 다시 구 시가지로 내려왔다.






점심 먹으러 필레 문 밖으로 나간다.























민속의상을 입고 물건을 파는 상인












Mimoza Restaurant.  해물스파게티





다시 필레문 쪽으로....







필레 문(Pile Gate)

구 시가지의 서쪽에 있는 문.

문 위에 있는 블라이세 상은 크로아티아의 조각가 이반 메슈트로비치의 작품.







스르지 산(Srd Mountain) 전망대 가기

스르지 산은 구시가의 북서쪽에 있는 높이 412m의 산.

정상에서 두브로브니크 시내와 아드리아 해, 로크룸 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정상까지 가는 방법 세 가지 : 케이블카 이용, 걸어서 2시간. 미니밴.

우리는 미니밴을 타고 올라갔다.

  















스르지 산에서 바라본 구 시가지







로크룸 섬과 구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크로아티아 내전 관련 자료 전시실






크로아티아의 내전

19916월 크로아티아가 구 유고연방에서 독립을 선언하자

이를 제지하려는 유고연방군 및 크로아티아 내 소수민족인 세르비아계가 합세하여

크로아티아를 공격하면서 발생한 분쟁이다.

유럽의 많은 학자들이 두브로브니크가 파괴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두브로브니크로 달려와

인간 방패의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면 이곳은 폐허로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UN의 중재 하에 19941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지난 2년 반의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내전은 종결되었다.

1999년부터 도시 복원작업이 시작되어 크게 손상된 건물들이 복원되었고

아름다운 해안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스르지 산에서 내려와 오늘의 숙박지인 두고폴레로 향했다.












두브로브니크두고폴레

두브로브니크에서 네움 들어갈 때, 네움에서 북쪽 크로아티아로 올라갈 때  여권 검사를 하고......

4시간 소요.

오늘의 보금자리는 HOTEL KATARINA(두고폴레).



<두브로브티크에서 해볼 것 세 가지>

* 바다에서 마을 조망하기.

* 성벽에서 마을 내려다 보기.(해질 무렵이 좋다는데, 오전에 성벽을 돌게 되어 아쉬움)

* 스르지산 정상에서 구 시가지와 아드리아해를 내려다 보기.


여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아드리아 해에서 수영해 보기.

그러려면 비키니부터 구입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