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 낙산사
2013.02.18(월)
아담한 언덕 위에 동해 바다를 앞마당 삼아 고즈넉하게 앉아 있는 낙산사.
십 여 년 전 겨울, 동해 바다 일출을 찍어보겠다고 (일출 시각도 확인하지 않고) 새벽부터 극성을 부려 낙산사에 갔는데, 너무 일찍 도착해서 아직 사방이 어두컴컴...... 손 발이 시려와서 의상대 밑에 있던 화장실 난로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몸을 녹이다가 나가보니 좋은 사진 포인트들은 이미 수많은 진사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어이가 없었던 추억.
그동안 가슴 아픈 큰 화재도 겪었고, 세월도 흘러 그때와는 달라진 부분도 간간이 보이지만, 의상대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동해바다는 그동안 내 머리를 무겁게 눌러온 쓸 데 없는 숙제들을 시원하게 날려보내 주었다.
오봉산 낙산사(五峰山 洛山寺) (명승 제27호, 사적지 제495호)
671년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창건하였고, 134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동해바다가 내려다보이고, 특히 해돋이가 아름다운 곳으로 관동팔경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낙산사는 2005년4월5일 양양군 일대의 대형 산불로 인해 많은 전각이 소실되었으나 2009년10월12일 단원 김홍도의 「낙산사도」와 발굴조사를 근거로 조선 전기 가람배치의 형태로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삼국유사 ‘낙산이대성(洛山二大聖)’ 조에 있는 낙산사 창건 설화
670년(문무왕10년), 중국 당나라에서 화엄학을 공부하고 신라로 돌아온 의상대사가 낙산에서 간절하게 기도한 뒤 7일 만에 자신이 앉았던 좌구를 물 위에 띄웠더니 천룡팔부의 시종이 나타나 의상대사를 관음굴로 인도하였다. 관음굴에 들어가 참례하고, 공중에서 떨어진 수정염주 한 벌과 동해 용에게 받은 여의보주 한 벌을 가지고 물러나왔다. 다시 7일 동안 수행하여 관세음보살님의 진용을 뵙게 되었고 “이 자리 위의 꼭대기에 대나무 한 쌍이 돋아날 것이니, 그곳에 불전을 짓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굴에서 나오니 과연 땅에서 대나무가 솟아났다고 한다. 그곳이 지금의 원통보전이 있는 곳이다.
대나무는 곧바로 없어져 진신이 거주함을 알았고, 그곳에 금당을 짓고 흙으로 불상을 만들어 봉안하고 낙산사라 하였다.
관음굴은 지금의 홍련암. 홍련암은 낙산사 창건의 모태가 된 암자로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한 관음성지이다.
관음성지는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란 뜻으로, 국내 3대 관음성지로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 남해 보리암이 알려져 있다.
홍예문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3호)
1467년 세조가 행차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사찰의 입구에 세운 무지개 모양의 돌문. 당시 강원도에 모두 26개의 고을이 있었는데 각 고을에서 한 개씩 석재를 추렴하여 건립했다 함.
홍예 위에 있는 누각은 1962년에 건립한 것.
<사천왕문>
사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고 사찰을 지키면서 사부대중을
돕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사천왕을 모신 문이다.
3칸 규모의 내부에는 비파를 연주하는 동방 지국천왕, 장검을
들고 있는 남방 증장천왕, 용을 잡고 있는 서방 광목천왕, 보탑 과 창을 들고 있는 북방 다문천왕이 있다.
1950년 6・25전쟁과 2005년 양양 산불의 재난 속에서도 이 문과 사천왕상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사천왕문을 지나면 빈일루(賓日樓)가 보이고...... 앞에 화재로 죽은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것이 마음 아프게 한다.
<동종>
500여 년 된 종을 화재로 녹여버리고, 2006년 새로운 종을 만들어 달았다.
2005년 4월5일 화재로 녹은 동종(보물 제479호). 낙산사 후문 쪽에 있는 의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원통보전>
관세음보살님을 봉안한 낙산사의 금당(본존불을 모시는 사찰의 중심이 되는 불전)으로, 671년 의상대사가 홍련암 관음굴에서 21일 기도 끝에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여의주, 수정염주와 함께 사찰의 건립위치를 전해 받은 곳에 원통보전을 세웠다. 원통보전에 봉안된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2호)은 고려시대 후반의 전통양식이며 강원도에서는 유례가 없는 건칠기법으로 조성된 불상이다. 2005년 화재 때 원통보전을 전소됐으나 건칠관음보살좌상은 무사했다. 원통보전은 2007년 11월에 복원되었다.
<칠층석탑> 보물 499호
의상대사가 세울 때는 3층이었는데 1467년(세조 13)에 7층으로 만들어 낙산사의 보물인 수정염주와 여의보주를 봉안하였다고 함.
탑의 높이는 6.2m로 부분적으로 손상된 곳이 있으나 상륜(불탑 꼭대기에 있는, 쇠붙이로 된 원기둥 모양의 장식) 까지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다.
조선시대 다층석탑의 전형적인 시대별 특징을 갖고 있어 보물로 지정된 석탑이다.
기단부에는 정방형 2단 지대석이 놓여 있는데 윗면의 24판 겹연꽃 무늬가 특징이고, 탑신부는 각 층의 탑신석 아래 굄틀을 놓고 위에는 3단 옥개받침을 올린 간략한 구조 형식이며 상륜부는 노반(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 위에 청동 복발(탑의 노반 위에 주발을 엎어놓은 것처럼 만든 장식)과 보륜(탑의 상륜부에서 노반 위에 있는 기둥머리의 금속 장식) 등을 장식하였다.
<원장>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4호
원통보전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으로, 조선시대 세조가 낙산사를 중창할 때 처음 쌓았다고 한다. 높이는 약 3.8m, 전체 길이 약 220m로 일부 원형이 남아 있고 대부분 2005년 산불 이후에 연결, 보수하였다.
장대석 기단이나 자연석 석축 위에 기와와 흙을 차례로 다져 쌓고 중간에 원형 화강석을 박아 넣어 조형미가 뛰어난, 조선시대 사찰의 대표적인 담장이다.
원통보전의 담장은 법당이 성역 공간임을 구분하면서, 원형 화강석은 단조로운 벽면의 의장에 긴장감과 변화를 연출한다.
<꿈이 이루어지는 길> 원통보전에서 해수관음상 가는 길.
<해수관음상>
대좌 위에 활짝 핀 연꽃 위에 서 있는데 왼손으로 감로수병을 받쳐 들고 오른손은
가슴쪽에서 들어 수인(手印)을 짓고 있다.
1977년11월6일 점안.
높이 16m, 둘레 3.3m, 최대 너비 6m로 대좌 앞 부분은 쌍룡상, 옆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했다.
키가 커서 7번 국도를 달리면서도 볼 수 있던데...
해수관음상 앞에 있는 해수관음전.
해수관음전 안에 불상을 모시지 않고, 유리창을 통해 해수관음상을 볼 수 있게 했다.
해수관음전의 유리창을 밖에서 본 모습.
해수관음상 옆에 있는 종. 원하는 사람은 종을 칠 수 있다. 조용히......
<보타전> <보타락>
<관음지>
연못에는 역시 물이 있어야 제 멋. 얼어붙은 연못은 어째 융통성 없는 고집탱이 같은 느낌.
<의상대>
관동팔경중 하나.
주변의 해송과 암벽, 그리고 동해바다가 어우러진 대표적인 해안 정자로
의상대의 일출은 빼놓을 수 없는 경관이다. 난간을 비스듬하게 세운 것이 특징.
살짝 비스듬하게 선 관음송이 멋드러져,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짓게 만든다.
정형적인 것 보다는 약간 삐져나온 멋이 아름답다.
후문에서 보는 의상대
홍련암에서 보는 의상대
해수관음상에서 보는 의상대
<홍련암>
의상대사가 동굴 속으로 들어간 파랑새를 따라가 석굴 앞 바위에서 기도하다 붉은 연꽃 위의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세운 암자. 67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후 수차례 중건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의상대에서 보는 홍련암
<낙산사 홍련암 감로수>
신라의 원효대사가 낙산사를 참배하기 위해 오다가 보니 흰옷 입은 여인이 논에서 벼를 베고 있었는데 대사가 그 벼를 달라고 하자 여인은 벼가 익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대사가 다시 길을 가다가 이번에는 속옷을 빨고 있는 여인을 만나 물을 청했는데 여인은 빨래를 빨던 더러운 물을 떠주었다. 원효가 그 물을 버리자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스님은 가지 마십시오."하고는 숨어버렸다. 원효가 돌아보니 그 여인은 없어지고 짚신 한 짝이 남아 있었는데 절에 와서 보니 나머지 짚신 한 짝이 관음상 앞에 있었다. 원효는 비로소 앞에 만났던 여인이 관음의 진신임을 깨달았다. <삼국유사>
이 기록을 보고 그 우물을 오봉산 정상 너머에서 찾아내었다.
<의상기념관>
<낙산다래원> 기념품과 전통차를 팔고 있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 산사에서 한가하게 마시는 차 한 잔을 원한다면 실망할 것 같다.
<무료 국수 공양실 표지판>
아차차, 절에서 주는 국수를 먹어볼 수 있었는데, 오후에 가서 못 먹었네...... 아깝다.
낙산사 시운
고려말 문인이며 유학자, 근계 안축의 詩
어려운 한자가 등장. 옴메 기 죽어. 그러나 친절하게 옆에 풀이를 해 놓았는데, 내 마음을 딱 꿰뚫어보신 듯하다.
의상대사가 관음암에서 진신을 친견하고 운운 .... 하는 말을 듣고는 현실감 없는 낙산사 창건 유래 전설이거니 하고 있었는데, 안축 선생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따지지 말고......."라 하시네.
이런 말씀을 하신 걸 보면 안축 선생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신 건 아닐까?
<낙산 배 시조목>
<낙산 배>는 조선 성종(1469-1494) 때 주요 과수로 지정된 재래종 황실이 품종이 낙산사 주변에서 재배되어 상품은 나라에 진상품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여기에 식재된 장십랑은 1893년 일본에서 개량된 것을 1915년 주지스님이 도내 최초로 경내에 재배한 후, 83년간 낙산 배 명성을 지켜온 시조목이다.
낙산 배 시조목
<취숙원> 템플스테이 수련원
매주 주말에 주제별로 명상형, 불교문화체험형, 수행형 등 체험할 수 있다.
낙산사 :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번지
입장료 : 성인 3000원.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 http://blog.daum.net/antique28/69
양양- 지중해풍 리조트 ‘쏠비치’ http://blog.daum.net/antique28/72
양양- 푸른 바다와 걸을 수 있는 해파랑길 41코스 http://blog.daum.net/antique28/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