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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조선총독부와 마주하기 싫어 북향으로 지은 집,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yolo28 2013. 11. 9. 12:35

2013.10.21

 

 

조선총독부와 마주하기 싫어 북향으로 지은 집,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尋牛莊)

 

 

심우장은 일제 강점기인 1933년에 만해 한용운이 지어 1944년 이곳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한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북향집인데, 독립 운동가였던 그가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되므로 이를 거부하고 집을 북향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처럼 일제에 저항하는 삶으로 일관했던 한용운은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심우장은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불교 설화에서 따온 것이다.

서울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됨.

 

 

 

 

간송미술관의 가을 전시를 관람하고 나와

삼청각 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왼쪽편으로 만해의 산책공원이 보인다.

 

 

만해 한용운에 대해서는 학창 시절에 배운 적이 있지만,

복습하는 의미로 만해 한용운의 약력과 업적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고......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1879.8.29 - 1944.6.29)

만해 한용운은 20세기 한국의 불교 개혁가이자 시인으로 법명은 만해이다.

아명은 용운으로 충남 홍성에서 출생.

일본의 식민 지배가 시작되던 1905년에 백담사에서 출가하였고,

일제 강점기(1905-1945)동안에는 저항 운동에 가담하였다.

1926년에 발간된 <님의 침묵>의 주제는 평등과 자유로서,

한국 독립 운동이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으로 전개되도록 역할을 하였다.

한용운 선생은 1919년 일본의 식민 지배로부터 한국 독립을 선언한 33인의 대표 중 한 분이다.

 

 

 

 

만해의 산책공원 옆으로 있는 계단을 올라 심우장으로......

 

 

만해의 산책공원에서 보기에는 계단만 올라가면 금방 심우장이 있는 것 같았는데......

두리번 거리다 눈이 조그만 사람에게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표지판 발견.

 

 

 

 

 

 

왼쪽이 심우장,  그 앞은 관리인 주택.(관리인 주택이 더 커......)

정면 4칸, 측면 2칸의 소박한 한옥.

가운데 대청이 2칸, 왼쪽(동쪽) 서재방이 1칸, 오른쪽(서쪽) 부엌1칸으로 되어 있다.

 

 

대문 왼쪽에 있는 소나무

 

 

대청마루.

만해 한용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전시실.

유리 전시장 안에는 만해의 육필 원고와 시집 <님의 침묵>이 들어있다.

 

 

磨杵絶葦(마저절위)

磨杵(마저)는 磨鐵杵(마철저)의 약자로 쇠로 만든 다듬이 방망이(공이)를 갈아서 침을 만들려 한다는 뜻으로,

노력(努力)하면 아무리 힘든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음을 뜻하며,

絶葦(절위)는 韋編三絶(위편삼절)의 고사로 종이가 없던 옛날에는 대나무에 글자를 써서 책으로 만들어 사용했었는데,

孔子(공자)가 책을 하도 많이 읽어서 그것을 엮어 놓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단 데에서 비롯된 말로,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으며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쉬지 말고 계속 정진하라'는 말씀

 

(참고 :韋(가죽 위)를 葦(갈대 위)로 쓰신 것은 옛날에는 음이 같은 자를 빌려 쓰는 경우가 있었는데 읽는 분들이 알아서 읽기도 했었고, 쓰는 분이 글자가 마음에 안 들면 일부러 바꿔 쓰기도 했다고 함)

 

 

 

 

 

부엌과 찬마루

 

 

만해와 손병희 선생이 좌장한 가운데 태화관에서 3.1독립선언식을 거행하는 광경(기록화)

 

서재방(심우장)

 

 

심우장 뒷뜰

 

 

 

 

한용운 선생이 직접 심으신 향나무

 

 

우체통 안에 심우장 스탬프가 있다는 안내가 있어,

찾아 찍어보니 잉크가 말라 아무 것도 찍히지 않더라.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찍고 갔다는 얘기?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참고 : 만해마을(만해기념관) http://www.manhae.net

심우장 :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2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