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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안동>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

yolo28 2014. 6. 2. 09:03

2014.05.10(토)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

 

 

 

이황 (1501~1570)

()           퇴계(退溪), 퇴도(退陶)

()         경호(景浩)

시호(諡號)    문순공(文純公)

관향(貫鄕진보(眞寶) 또는 진성(眞成)

()          진사(進士) 이식(利殖)

()          춘천 박씨(春川 朴氏)

 

 

퇴계 선생의 약사

 

1501 (연산군 7) 출생(出生) Childhood

예안현 온계리 (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진사 이식의 71녀 중 막내로 태어남.

1502 (연산군 8) 생후 일곱 달 만에 부친 별세.

 

1511~1530 초년기(初年期) During Adolescence

1512 (중종 7) 숙부인 송재공(松齎公)에게 논어를 배움.

1517 (중종 12) 8월 경상관찰사 김안국(金安國)이 안동부를 순찰할 때 형과 함께 찾아가 강의를 들음. 정신적 지주인 숙부 별세.

1520 (중종 15) 침식을 잊어버리고 열심히 주역을 탐독. 이 때 병을 얻어 평생 동안 고생함.

1523 (중종 18)상경하여 태학(성균관)에서 수학.

1534 (중종 29) 문과에 급제. 승문원 권지부정자와 예문관 검열이 되고, 춘추관, 기사관, 경연시독관 등의 요직을 겸임함.

1542 (중종 37) 어사로 충청도, 강원도 감찰.

1544 (중종 39) 10월 상경 후 중종이 승하 하자 죽음 알리는 글을 씀.

1548 (명종 3) 외직을 자청하여 단양군수로 취임(9개월). 10월 풍기군수로 전임(12개월). 단양팔경은 퇴계 선생이 이때에 선정한 것임.

1549 (명종 4) 백운동서원을 사액(賜額)하기를 왕에게 고하여 최초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됨. 9월 신병으로 사퇴하고 귀향함.

1550 (명종 5) 계상에 한서암을 짓고 학문에 전념하자 각지에서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음.

 

1551~1560 노년기(老年期) During his old age

1553 (명종 8) 4월 성균관 대사성에 제수(除授)되었으나 사퇴하고 정지운(鄭之雲)의 천명도를 개정하는 등 학문에 전념함.

1554 (명종 9) 경복궁에 새로 지은 여러 전각의 편액을 씀. 중수경복궁기를 지어 올림.

1556 (명종 11) <주자서절요>를 편찬 완성함.

1557 (명종 12) 도산서당 지을 터를 마련하고 <계몽전의>를 저술함.

1558 (명종 13) 23세의 율곡 이이(李珥)가 계상서당을 찾아와 도학을 논함.

1559 (명종 14) <송계원명리학통록>을 편찬함.

1560 (명종 15)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에게 답하는 편지 형식으로 철학적 대명제인 47정론을 논변함.

1561 (명종 16) 3월 절우사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경치를 돌아보고 도산기 등 명문을 남김. 도산서당, 농운정사 완공됨.

1566 (명종 21) <심경후론>을 지음. 10월 이언적(李彦迪) 선생 행장(行狀)을 지음.

1567 (명종 22) 임금의 교지를 받고 상경한 후 명종이 승하하자 대행왕의 행장(行狀)을 지음.

1568 (선조 원년) 의정부 우찬성과 판중추부사에 제수(除授)되자 6월 소명을 어기지 못해 상경하여 양관 대제학을 겸임함. 재임 중 무진육조소를 지어 왕에게 올림.

12월 제왕학인 성학십도를 올리자 왕은 정원(政院)에 병풍과 장첩을 만들 것을 명함.

 

1561~1570 만년기(晩年期) During later years

1570 (선조 3) 제자들에게 심경과 <역하계몽>을 강의. 고봉 기대승과 심경정도를 의논하고 11월 그의 격물치지설을 개정함.

12월 장사준비를 갖추게 하여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명문과 자명까지 몸소 써놓고 8일 한서암에서 고요히 세상을 떠남.

1576 (선조 9) 문순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짐.

<도산서원 홈피에서 가져옴>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들어가면 이렇게 잘 정비된 길을 따라 들어간다.

 

 

 

 

 

 

 

시사단(試士壇)

                                                       조선시대 지방별과를 보였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

정조대왕께서 퇴계 이황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정조16년(1792년)에

관원 이만수를 도산서원에 보내 임금의 제문으로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 다음날 이곳 송림에서 어제(御題)로 과거를 보였는데 응시자는 7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비문은 당시 영의정인 번암 채제공이 지었다.

안동댐 수몰로 송림은 없어지고 단(壇)만이 현 위치에서 지상 10m 높이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과거의 자리를 표해두고 있다.

 

 

 

 

열정(冽井)

도산서당의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로 역경의 정괘(井卦) '정렬한천식(井冽寒泉食)'에서 의미를 취하였다.

우물은 마을이 떠나도 옮겨가지도 못하고, 퍼내어도 줄지 않는다.

이처럼 무궁한 지식의 샘물을 두레박으로 하나하나 퍼내어 마시듯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심신을 수양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도산서원 입구

 

 

 

양쪽에 심어진 모란의 꽃들이 지기 시작.

누가 그랬던가?  이 꽃 이름은 시(詩), 화(畵)에 등장할 때는 모란이고, 화투 칠 때는 목단이라고....

 

 

 

 

몽천

몽매한 제자를 바른 길로 이끌어 간다는 의미로

<역경>의 몽괘(蒙卦)에서 의미를 취하여 몽천이라 이름하였다.

 

 

 

 

 

 

도산서당(陶山書堂)

퇴계 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1561년, 명종16)몸소 거처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거처하시던 방은 '완락재'라 하였고, 마루는 '암서헌'이라 하였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 당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도 함께 지어졌다.

 

 

 

 

 

 

 

 

정우당(淨友塘)

퇴계 선생은 꽃 중의 군자라는 연꽃을 심어 정우당이라 하였다.

연꽃은 진흙탕에 살면서도 몸을 더럽히지 않고, 속은 비고 줄기는 곧아 남을 의지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맑다.

 

 

 

 

절우사(節友社)

퇴계 선생께서 매화, 대나무, 국화, 소나무 등을 몸소 심어 가꾸시던 화단이다.

퇴계 선생께서는 매화를 매우 좋아하셨다고 들었는데......

(퇴계 선생의 매화 사랑 이야기는 제주 노리매공원 포스팅 참고 : http://bolg.daum.net/antique28/144 

 

 

 

 

 

 

 

광명실(光明室)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현판은 선생의 친필이다.

동, 서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해(濕害)를 방지하기 위하여 누각식으로 지었다.

광명(光明)은 '많은 책이 서광을 비추어 준다.'는 뜻.

 

 

 

 

전교당(典敎堂)

퇴계 이황을 추모하는 도산서원의 강당에 해당되는 건물.

조선 선조 7년(1574)에 건립.

건물구조는 강당인 대청과 거실인 온돌방(閑存齋)으로 구성되었고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선조가 내린 현판 글씨는 명필인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쓴 글씨.

전면 좌우에는 부속 건물로 동재(東齋)인 박약재와 서재(西齋)인 홍의재가 있다.

 

 

 

선비 문화 체험 연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열심히 마루를 닦고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아 오늘 문화체험 연수가 있는 가 보다.

 

 

 

 

동, 서재(東, 西齋)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건물.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동편 건물을 '박약재'라 하고, 서편 건물을 '홍의재'라 한다.

 

 

 

 

 

 

 

 

장판각

                                                                       서원에서 찍어낸 책의 목판본을 보관하는 장소.

선조 어필, 퇴계선생문집, 유묵, 언행록, 병서, 도산십이곡 등 목판 2,790장을 보관해 오다가

보존과 학술연구를 위해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관함.

 

 

 

 

 

도산서원 상덕사 부 정문(陶山書院 尙德祠 附 正門)

퇴계 이황을 모시는 사당으로 이를 둘러싼 담장도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다.

당시에는 흙담장이었으나 도산서원 정비사업 때 현재의 돌담장으로 바꿈.

상덕사는 조선 선조 7년(1574)에 건립되었으며 이황의 위폐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곳이다.

정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홑처마의 맞배집이다.

 

 

 

 

 

 

전사청(典祀廳)

상덕사에서 향사를 지낼 때 제수를 마련하여 두는 곳. 제수청과 주고(酒庫)가 있다. 

 

 

 

 

 

고직사(庫直舍)

서원을 관리하는 수호인들의 살림집으로 상, 하에 고직사가 있다.

 

 

 

 

유물전시관 

 

 

 

 

 

 

 

 

 

 

 

 

역락서재(亦樂書齋)

퇴계 선생께서 도산서당에서 학문을 강론할 때 정사성을 비롯한 제자들이 힘을 모아 세웠다.

현판의 글씨는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퇴계 이황의 사진과 도산서원은 1000원권 구권에도 나와 있다.

현재는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로 바뀜.

 

 

 

 

 

도산서원 : http://www.dosanseowon.com/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680.  (054)840-6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