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4.08 북유럽

<북유럽> 덴마크 코펜하겐 - 중세의 아름다운항구, 니하운 항구/ 안데르센 거리/ 시청사

yolo28 2014. 9. 19. 09:40

2014.8.13

 

 

 

중세의 아름다운 항구/니하운 항구

니하운 운하에 위치한 ‘새로운 항구’라는 의미로 1673년에 개항.

17세기 코펜하겐이 북해 무역의 중심이었던 때에 인공적으로 만든 항구다.

선원들이 휴식을 즐기던 술집 거리였으나

현재는 북쪽으로는 17-18세기에 지어진 파스텔톤의 건물들과 레스토랑, 카페들이 있고

남쪽에는 고풍스런 건물들이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거리이다.

운하를 따라 서있는 18세기 풍의 건물들이 멋지다.

 

 

 

 

 

 

 

 

 

 

 

 

 

 

 

 

 

 

 

 

 

 

 

 

 

 

 

 

안데르센 거리

안델센이 22년 거주했던 빨간집. 생가는 멀리 떨어진 ‘오덴세’에 있다. 

15살에 니하운으로 온 안데르센은 방세 때문에 여러 번 이사를 하며

가난한 청년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건물 3층 아래쪽에 안데르센이 살던 곳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네.

 

 

 

 

안데르센이 살던 빨간집 옆 건물에 있는 안데르센 기념품 가게

 

 

 

 

 

 

 

 

카페에는 꽤 나이 어려 보이는 아이들이......

 

 

 

 

 

자전거의 나라 덴마크

여왕도 자전거를 타고 시장을 보러 다니신다니 그야말로 자전거의 나라!

 

 

 

 

 

코펜하겐 시청사

1905년 건설된 붉은 벽돌의 중세풍 건물.

건축가는 옥상에 자연채광창을 크게 내어 충분한 일조량을 받을 수 있게 했는데

이런 덴마크(북 이탈리아)양식의 건물은 북유럽에서 보기 힘들다. 

건축상을 여러 번 받은 건축물이다.

 

지면에서 탑까지의 높이는 106.5m이며, 탑 위에 오르면 코펜하겐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느데

그 이유는 덴마크에서는 법적으로 이 시청사 건물보다 높게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건물 6층 높이)

누구나 공평한 조망권을 갖기 위해서라고 함. (단 호텔과 병원은 제외)

탑의 종은 15분마다 울리며,

시청 내부에는 1955년 옌스올센이 설계한 독특한 천체시계가 있다.

 

 

 

 

 

압살롬 대주교 부조상

시청사의 중앙에 코펜하겐 건설의 주역인 압살론 대주교의 황금 부조상이 보인다.

 당시의 주교들의 힘이 셌지만 압살롬 주교(1128-1201 조국의 아버지라 불림)는

어릴 때부터 발데바 3세와 같이 자라서 발데바 3세의 후광으로 더욱 힘이 있었다고 한다.

코펜하겐 시의 창설자이다.

 

압살롬 주교상 바로 밑에 있는 테라스는 신년에 마가렛 여왕이 인사 하는 곳.

 

 

 

시청 정문에 들어서면 바로 앞에 보이는 벽 장식

 

 

 

시청 문에 장식된 스테인글라스.

 

 

시청사 1층 홀

들어가지 못 하게 줄을 쳐 놓음.

덴마크 국기가 여러 개 걸려 있다.

 

 

 

고풍스런 계단

 

 

 

시청사 바깥 광장

시청사 왼쪽, 탑이 있는 건물은 Palace Hotel.

호텔 옆 건물에는 맥도날드가......

 

 

 

 

안데르센 동상

시청사 옆에 있다.

안데르센이 쳐다보고 있는 곳은 시청사 건너편에 있는 티볼리공원.

 

안데르센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에게 4번 프로포즈 했다가 4번 다 거절 당해

그 실연의 상처로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살았다고 한다.

그는 평소에 항상 아동 문학가라 불리는 것을 매우 싫어해서

“나는 아동 문학가가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자기 책은 성숙한 어른이어야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죽을 때는 “혹시 내가 죽은 후 상을 만들게 되면 절대 동상에 아이를 만들거나 세우지 말라.”고 유언 했고,

고향 ‘오덴세’에는 안데르센 동상이 많이 세워져 있으나

유언을 따라 애들이 같이 있는 동상은 하나도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

1805년 4월 2일, 덴마크 제2의 도시 오덴세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수선공, 어머니는 세탁부 일을 했는데 집안 형편은 늘 어려웠다.

안데르센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를 썼으며, 희곡·소설·시·여행기뿐만 아니라 몇 권의 자서전도 남겼다. 이들 여러 작품들은 덴마크 국외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동화만은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많이 번역되는 작품에 속한다. 빈민가에서 태어난 안데르센은 당시의 엄격한 계급 구조를 타파하고자 힘겹게 투쟁했다.

안데르센의 첫번째 동화책 〈어린이들을 위한 옛날 이야기 Eventyr, fortalte for b'øn〉(1835)에는 〈부시통 The Tinderbox〉·〈땅딸이 클라우스와 키다리 클라우스 Little Claus and Big Claus〉·〈공주와 완두콩 The Princess and the Pea〉·〈꼬마 이다의 꽃 Little Ida's Flowers〉 등이 실려 있다.

이후 안데르센은 <엄지 공주> <꿋꿋한 양철 병정> <인어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눈의 여왕> <전나무> <나이팅게일>같은 대표작을 비롯해 200여 편의 동화를 꾸준히 발표한다.

    

그의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끄는 이유는 안데르센이 불행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슬픈 이야기들에는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들어 있다. 평생 자신이 아웃사이더라고 느꼈고, 사람들이 그를 완전히 받아들인다고 결코 흡족해 하지 않았으며,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깊은 고통을 느꼈다. 1840~57년 유럽·소아시아·아프리카를 두루 여행하며 느낀 점을 기록하여 수많은 여행기를 내놓았다. 이 가운데 〈시인이 간 중동의 장터 En digters bazar〉(1842)·〈스웨덴 여행기 I Sverrig〉(1851)·〈스페인 여행기 I Spanien〉(1863) 등이 뛰어나다. 안데르센은 한 번 쓴 것을 없애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그의 일기와 수천 통에 달하는 편지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 1975년 엘리아스 브레드스도르프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그의 생애와 작품 Hans Christian Andersen:The Story of His Life and Work〉을 출판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티볼리 놀이공원

약4만㎢의 면적으로 1843년 개장되었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놀이공원으로 시청사 맞은편에 있다.

세계 각처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유원지.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온 게오르크 카르스텐센(Georg Carstensen)이

당시 국왕 크리스티안 8세에게 건의하여 왕가의 정원을 개조하여 만든 새로운 형태의 도시형 공원이다.

공원의 모델이 이탈리아 티볼리 시에 있는 에스테가(家)의 정원이어서 티볼리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왕가의 공원을 시민공원으로 조성하도록 허가한 이유는 주변 국가와의 분쟁으로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코펜하겐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려는 배려도 작용하였다.

많은 소설가와 시인들이 티볼리 공원을 사랑했으며,

특히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자주 이곳을 찾아와 새로운 동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오늘 돌아본 곳들(연두색 테두리)

 

오전에 인어공주상, 게피온분수대, 아말리엔보르궁전, 오페라하우스, 니하운 운하,

코펜하겐 시청사, 티볼리공원을 돌아보았다.

이제는 점심 먹으러......Go Go!!!

요리